밑줄긋기,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 by 세빈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작가 역시 특정한 공간 안에 존재한다. 작가는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이런 공간을 지각한다. 대동아공영권이라면 이광수 문학의 지리적 지평이 뻗어나간 바대로 씽가포르에서 진주만 사이에 거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광수의 문학은 씽가포르에서 진주만 사이의 문학이랄 수 있다.
  분단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현실적으로 휴전선 너머의 일들은 분단문학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후반 한반도에 존재한 모든 문학은 분단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남쪽이든 북쪽이든 그 지평은 공히 휴전선을 넘지 못했으니까. 휴전선 안쪽의 일들, 그러니까 휴전선 안쪽의 사상과 세계와 관념을 담고 있다면, 그건 먼 훗날, 우리가 지금 이광수의 문학을 두고 말하는 것과 같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전쟁에서 패하고 해방이 찾아온 뒤, 이광수의 문학은 특정한 시기의 공간을 내면화한 '친일문학'으로 묶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일이 되고 새로운 지평이 우리에게 펼쳐지면, 20세기 후반 휴전선을 넘어갈 수 없었던 많은 문학작품들은 '분단문학'으로 칭해질지도 모른다. 이런 '친일문학'이라든가 '분단문학'이라는 한정적 문학의 정반대편에는 특정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소설이 존재할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지리적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문학. 본질적으로 말하면, 그 어떤 경계에도 갇히지 않는 문학. 진지한 작가라면 바로 이런 소설을 꿈꾼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공간에서 가장 먼 곳까지 가려고 든다. 그런 점에서 김수영은 옳았다. 진지한 작가들은 필연적으로 불온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들은 경계를 넘어가되 아주 넘지는 않는다. 문학은 이처럼 미묘한 지점에 존재한다. 해방 정국에 북으로 넘어간 작가의 작품들 대부분은 결국 이광수의 문학과 같은 처지가 됐다. 그들은 아예 넘어가서 거기서 다시 국내문학을 한 셈이다. 대신 그 경계선 주변에서, 김수영의 표현을 빌리면, 그 경계선을 "온몸으로 조금씩 밀어대는" 자들은 곧잘 아주 신기한 돌연변이를 만들어낸다.

  그런 까닭에 작가는 씸퍼사이저 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이상이 되는 경우, 작가는 사상가로 바뀌면서 '국내'라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국내란 중심을 향해 응축되는 공간이다. 진지한 문학이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낯설게 만들어 자아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게 만드는데, 국내용 문학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자신들이 아는 세계에 맞게 자아를 만들어내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고 나면 경계선 바깥은 모두 타자가 된다. 국내용 문학이 하는 일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이게 바로 근대문학이 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국내용 문학은 지리적 개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거기에 민족적 개념, 인종적 개념, 젠더적 개념이 모두 들어간다. 이런 근대문학이란 마땅히 종언을 고하는 게 옳지 않을까? 내가 서 있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내디디만 타자들의 세계라고 치자.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문학 개념어로 어떻게 그 세계를 그릴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 전선에서 월경을 꿈꾸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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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이상이 말한 '나간다'나 김수영이 말한 '가야겠어요'란 똑같은 의미의 말이다. 그건 단순히 집을 떠난다는 게 아니라, 국경을 넘어 외국으로 간다는 이야기이며, 한편으로는 어떤 경계를 넘어간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 방법으로 이상이 오들오들 떨면서 암흑 속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가는 길을 택했다면, 김수영은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갔다. 두 사람은 결국 박인환처럼 국경은 넘어가본 일이 없지만, 박인환과 달리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멀리까지 나가본 시인들 중에 속한다. ...... 김수영은 국경을 넘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들오들 떨면서 암흑 속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본 이상 역시 마찬가지다. 문학이란 가장 멀리까지 가본 자들만이 하는 행위다. 그들은 언제나 떨어대면서 온몸으로 38선을 조금 더 밀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과 김수영은 한번도 국경을 넘어보지 못한 몸으로 월경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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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평하기를 여행에 관한 허영기라고 하던데, 사실 여행과는 관계가 없지 않나 싶다. 내겐 김연수가 왜 국경 바깥, 민족 바깥에 집착하고 경계를 넘고자 하는지 알게 해준 책이었다. 내게 디아스포라를 일깨워준 것은 B선생님과 K선생님이었지만 김연수에게는 휴게소와 이상과 김수영이었나보다. 나와 비슷한 곳에 관심을 가진 작가를 알게 되어, 게다가 그 작가의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아직 많아서 아주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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